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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거짓말하는 조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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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tamp: 2026-07-24T23:39:33.45329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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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하는 조직도

고장 난 의사결정 구조 위에 AI를 얹을 때 생기는 일

by[조직탐험가K](/%40kevinkimwe65)

Jul 20. 2026

> 본부장님, 그 건은 어제 대표님이 직접 지시하셔서요. 지난주부터 저희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입사 8개월 차 사원의 말이었다. 이경훈 본부장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자기 본부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은 이미 일주일 전에 시작되어 있었고, 그 사실을 그는 방금, 신입사원의 입을 통해 처음 들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게 더 문제였다. 익숙했으니까. 그의 명함에는 분명 '본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고도 임원급이 세 명 더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무언가를 실제로 '결정'하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이경훈 본부장이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조직 진단 차원의 1:1 임원 면담 자리에서였다. 그는 이직 전, 이 회사 전체 인원의 세 배 규모의 조직을 이끌던 사람이었다. 옮긴 것도 그가 원해서가 아니었다. 대표가 몇 번이나 찾아와 "제발 도와달라"라고 간청했기 때문이었다. 스톡옵션을 제안받은 것도 아니고, 오직 이 회사가 하는 사업이 매력적이고 전망이 괜찮다고 해서, 또 대표가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 옮겼다고 했다.

그런데 옮기고 며칠 만에 '아차' 싶었다고 했다. 조직도가 없었 어떤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한 밑그림도 전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사업은 대표를 중심으로만 돌았다. 모든 업무가 최적화된 큰 조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의 눈에, 이 작은 회사의 풍경은 낯설었다고 했다. 면담이 끝나갈 무렵, 그는 질문이라기보다 탄식에 가까운 말을 했다.

> 이렇게 하실 거면… 그냥 1인 기업을 하시지, 왜 C레벨을 이렇게 많이 뽑으셨을까요?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이 회사가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조직도는 거짓말을 한다**

조직 컨설턴트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요청하는 문서는 조직도다. 회사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조직도를 주지 않았다. 몇 번을 요청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담당자가 바쁜가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직도와 실제 업무가 하도 따로 놀아서, 있는 조직도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지 이미 2년 가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 예전 조직도라도 달라고 해서 받아 봤았지만, 그 조직도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조직도가 보여주는 세계와 사람들이 실제로 일하는 세계가 완전히 달랐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래된 통찰 하나를 떠올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조직을 본질적으로 '의사결정을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보았다. 부서를 네모 칸으로 그려서 선으로 이어 붙인 조직도는 겉모습일 뿐이고, 조직의 진짜 정체는 "어디서, 누가, 어떤 정보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결정을 내리는가"라는 얘기다.

![](//img1.daum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t1.kakaocdn.net/brunch/service/user/13f6/image/6IAJPdYg5lmGruTg8yuZVeJx5TE.jpg)허버트 사이먼 (1916-2001)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것은 부서 배치도가 아니다. 결정이 실제로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를 그린 지도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 회사의 조직도는, 그리기가 무척 쉬웠다. 모든 선이 단 하나의 점, 대표이사에게로 수렴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할 개념의 정확한 대척점이다. 결정권이 그물처럼 여러 곳에 분산되어 서로 연결된 조직이 아니라, 단 하나의 과부하된 허브(hub)로 모든 결정이 몰려드는 조직. 모든 선이 한 점에서 뻗어나가고 다시 그 한 점으로 되돌아오는, 방사형(放射形) 구조. 임원이 넷이나 있어도, 결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회사는 사실상 '1인 조직'이었다. 이경훈 본부장의 탄식은 정확했다.

### **여러 가지 증상, 하나의 병(病)**

진단 과정에서 파악된 이 회사의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런데 이슈 목록을 들여다볼수록, 이것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병이 드러내는 다양한 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대표가 중간관리자를 건너뛰고 실무자에게 직접 지시한다. 이경훈 본부장이 신입사원의 입으로 자기 본부의 일을 전해 들은 그 장면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관리자는 결정 근육을 쓸 기회 자체를 빼앗긴다. 쓰지 않는 근육은 서서히 위축되고, 책임감 저하로 이어진다. 대표의 부담은 늘어나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제 때 내려지지 않는다.

전 직원이 참여하는 주간회의를 네다섯 시간씩이나 하는데도, 정작 그 자리에서 의미 있는 결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긴 시간의 정체는, 모든 팀이 저마다 한 일을 시시콜콜 대표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 40개 가까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온갖 정보를 대표 한 사람에게 방송하는 의례에 가까웠다. 주간회의 준비를 위해 팀원들은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정작 일할 시간을 회의용 보고 자료 만드는 데 쓰는 셈이니, 직원들의 불만과 스트레스가 여기서도 자라났다.

더 이상 사업성이 없는 사업을 3년째 접지 못한다. 참가 자격조차 없는 사업을 몇 개월 동안 준비하다 막판에 그 사실을 알고 포기하니, 담당자들이 크게 낙담한다. 신규 프로젝트 기회를 신중한 검토 없이 덥석 수락해, 수익성은 나빠지고 구성원은 지친다. 대표가 직접 챙겨서 꽤 결과가 괜찮았던 사업을 이끌던 팀원이 번아웃 끝에 퇴사를 하면 회사가 패닉에 빠진다. 그 사람이 경쟁사로 가서 우리 먹거리를 가져갈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 모든 증상의 뿌리는 하나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되돌릴 수 있으며, 언제 멈추는가에 대한 규칙이 없다는 것. 전사 차원의 의사결정 거버넌스가 없으니, 결정은 규칙이 아니라 대표 한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다.

"긴급한 일에 밀려 중요한 결정이 자꾸 지연된다"는 증상. 제임스 마치(James March)와 허버트 사이먼이 1958년 저서 『조직론(Organizations)』에서 '계획의 그레셤 법칙(Gresham's Law of Planning)'이라 불렀던 현상이다.

※ 원래 그레셤 법칙은 화폐(경제학)에 관한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로 유명한데,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헨리 8세 등)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은화에 불순물을 많이 섞은 질 나쁜 돈을 유통시켰던 것을 비유한다. 은 함량이 높은 좋은 동전과 낮은 나쁜 동전이 같은 액면가로 유통되면, 사람들은 좋은 동전은 장롱에 숨겨두고 나쁜 동전만 시장에 내놓게 되어 좋은 동전은 유통에서 사라지는 현상이다.

마치와 사이먼은 이 원리를 조직의 시간에 적용했다. 일상적이고 급한 일(악화)이 중요하고 장기적인 일(양화)을 업무 어젠다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급한 불을 끄느라 정작 접어야 할 사업은 못 접고,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은 덜컥 시작한다. 이 회사는 이 법칙의 교과서적 표본이었다.

### **등이 가려운데 허벅지 긁기**

그런데 처음에 이 회사는 '조직문화'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내게 요청한 것도 소통, 피드백, 동기부여 같은 '조직문화' 처방이었다. 물론 그런 문제도 있었다. 회사 직원들은 "일이 힘들다"라고 했다. 하지만, 관찰해 보니 오히려 일이 별로 없어서 힘들 것 같은 회사였다. 가려운 건 등인데, 손이 안 닿으니 아쉬운 대로 허벅지를 긁고 있다는 느낌이 쎄하게 들었다.

우선, 야근은 거의 없었다. 업무 강도도 높지 않았다. 심지어 한 담당자는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 3년 근속 보상으로 2주 휴가를 다녀왔고, 그 바람에 워크숍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다. 정말로 사람을 갈아 넣어야 겨우 돌아가는 조직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대부분의 일이 기획과 영업이라 성과의 불확실성은 높았지만, 그것이 곧 고강도 노동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지치게 했을까.

애써 노력한 것에 비해 돌아오는 성과와 인정이 너무 적다는 것, 그리고 결정이 자꾸 뒤집힌다는 것이었다. 어제 대표가 정한 방향이 오늘 바뀌고, 그러면 지난주의 노력은 통째로 무의미해진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일의 양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 무력감이었다. '문화 문제'처럼 보였던 것의 정체가, 실은 '의사결정 구조 문제'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조에 갇힌 사람이 직원들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작 모든 결정이 몰려드는 그 중심, 대표 자신도 답답해하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내가 아무리 밖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물어와도, 내부에서 서포트가 안 되니 한계를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병목이라는 사실은 외면한 채, 병목 뒤에 쌓여가는 정체(停滯)만을 답답해하고 있었다. 모든 결정을 한 곳에 모으면, 결국 그 한 곳도 무너진다. 방사형 구조는 우회당하는 임원만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홀로 선 사람마저 서서히 소진시킨다.

### **사이먼의 더 깊은 칼날, 그리고 AI라는 반전**

이 회사에 대해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이 회사는 이미 1년 전부터, 전 직원에게 회사 비용으로 AI 도구를 열어주고 있었다. 직원들의 활용 능력도 제법 높아졌다. 그런데 관리 담당 임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말했다.

> 스킬은 분명 늘었는데요, 이상하게 일이 빨라지거나 사업이 나아지질 않아요.

이것은 이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를 도입했는데 왜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가. 지금 수많은 조직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의 절반은, 다시 허버트 사이먼에게 있다.

사이먼은 1971년에 쓴 논문 「정보가 풍부한 세계를 위한 조직 설계」에서, 지금 시대에 소름 돋게 들어맞는 인사이트를 남겼다. '정보의 풍요는 주의력의 빈곤을 낳는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가 잡아먹는 주의력(attention)이라는 것'이다.

AI는 분석과 산출물을 값싸게 찍어내는 기계다. 보고서도, 아이디어도, 시나리오도 순식간에 뽑아낸다. 그러니 AI가 흔해질수록 조직의 진짜 병목은 '좋은 분석을 생산하는 일'에서 '넘쳐나는 분석 중 무엇에 주의를 주고, 누가 그것으로 무엇을 결정할지 배분하는 일'로 옮겨간다.

새로운 AI 도구가 조직에 도움이 되려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정보를 응축(condensation)하여 판단과 실행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런 체계 없이 분석만 쏟아내는 AI는, 조직의 주의력 빈곤을 오히려 악화시켜 조직을 ADHD에 빠지게 만든다. 바로 이것이 그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결정 구조가 없는 곳에 AI를 붙여봤자 성과가 높아지지 않고, 최악의 경우, 신중한 검토 없이 수락한 신규 프로젝트로 망하는 속도를 가속화할 위험마저 있다. 고장 난 의사결정 구조 위에 AI를 얹으면, 조직은 더 빠르게 망할 수 있다.

![](//img1.daum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t1.kakaocdn.net/brunch/service/user/13f6/image/TkohjrvZpMMPJZ0qbXxmQAUu_Ls.jpg)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주의력 부족, 산만함, 충동성, 과잉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장애

### **잘 작동하는 의사결정 시스템**

허버트 사이먼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이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다. 인간은 완전한 정보와 무한한 계산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이만하면 충분한' 답을 고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제한된 정보 아래에서 의사결정을 정교하게 관리한 조직을 꼽으라면, 나는 아마존을 든다. 제프 베조스는 대부분의 결정을 원하는 정보의 70% 수준에서 내리라고 했다. 90%를 기다리면 대개 너무 늦는다는 것이다. 완벽한 정보가 갖춰졌을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라는 통찰이, 사이먼의 '이만하면 충분함(satisficing)'과 정확히 포개진다.

베조스는 되돌릴 수 있는 결정과 없는 결정을 구분하라고도 했다. 되돌릴 수 있는 '양방향 문(two-way door)'은 가볍고 빠르게, 되돌릴 수 없는 '일방향 문(one-way door)'은 신중하게. 결정의 가역성(reversibility)에 따라 의사결정의 거버넌스를 다르게 배분한다는 것이다.

합의가 어려운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헌신한다(disagree and commit)"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것은 신뢰의 언어다. 네트워크에서 정보가 아무리 빨리 흘러도, 노드 B가 노드 A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 정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한다. 네트워크의 진짜 대역폭은 정보가 아니라 신뢰다.

**(다음 브런치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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